[시론]헌트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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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28호] 승인 2018.05.2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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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이 백인보다 게으르다거나, 여성은 남성보다 감정적이고 육체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사회적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제한적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인종차별주의 또는 성차별주의자들이다. 그동안 사람들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편견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왔고, 세상에는 아직 인종과 성차별에서 불평등한 점이 많이 남아 있지만 그러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한편, 종차별주의자들은 사람 외의 동물은 사람에 비하여 생명의 가치가 적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동물은 인간과 비슷한 천성(天性)을 가지고 태어났을 지라도 그것을 지키고 배워서 천성을 유지하고 실천하려는 사람과는 달리,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과 같은 도덕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호모사피엔스는 다른 척추동물 종보다 생명의 가치가 증가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덕적인 관점에서 볼 때, 동물이 사람보다 더 나은 경우도 있다. 동물보다 더 잔인한 살인마가 있는가 하면,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으로 부대원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헌트소위 같은 군견(동상이 제 4땅굴 앞에 우뚝 서 있다)을 생각해 볼 때, 도덕심에 기반을 둔 생명의 가치를 사람과 동물 각각의 개체가 아닌 종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다루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생명의 가치는 한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각각의 개체의 도덕적 가치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그러면 어떠한 기준으로 생명의 가치를 판단 할 수 있을까?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나름대로의 방식에 따라 생명을 유지시키려고 노력한다. 또한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것을 이루고자 배우고 일하며, 사회활동을 통하여 그 사회가 발전하고 번영하는데 이바지 한다. 생명을 유지시키고자 하며 또한 살아가면서 열망을 이루려는 노력을 생명의 가치로서 판단한다면, 그것들을 이루어내는 능력이야 말로 그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자기의 생명에 대하여 자포자기(自暴自棄)하거나 살면서 무엇인가 이루고자 하는 욕구가 없는 사람이라면 살기 위해 노력하는 동물보다도 생명의 가치가 적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생명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또한 살면서 사람의 열망과는 다르지만 각 동물 특유의 열망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동물이 自暴自棄한 사람보다 생명의 가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의 가치를 이루어내는 능력만 가지고 동물과 사람을 비교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힘세고 빠르고 열망으로 가득 찬 동물보다는 능력이 제한적인 노인이나 어린이를 더 보살핀다. 능력이 제한된 사람들을 더 보살피는 이유는 사람에게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는 도덕심과 맹자가 말한 친친인민애물(親親仁民愛物)이라는 차등애(差等愛)가 우리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이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과 나름대로의 정신적 욕구를 이루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것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동물과 공존한다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러면 이제 이러한 동물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대해 주어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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